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도스 섬 (문단 편집) ==== 고대 ==== [[파일:터키 갈라티아 4.png]] 기원전 190년경의 로도스 왕국 (붉은색) 고대, 특히 [[헬레니즘]] 시대에 동지중해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작은 섬의 도시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부와 군사력[* 해군과 투석병이 유명했다.]을 자랑했으며,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로도스의 거상]](Colossus)을 세운 일도 이때이다.[* 마케도니아의 왕 폴리_오케르(공성자) 데메트리오스의 공격을 격퇴한 기념으로 세웠다.] 용병으로도 유명해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슬링]] 전문인 로도스섬 투석병은 지중해에서 최강의 명성을 자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통해 육성했다고 하는 이들 용병들에 대해 그리스의 군인이자 문필가 [[크세노폰]]은 자신이 쓴 책 <페르시아 원정기>에서 납탄을 던지는 로도스 투석병의 사거리가 주먹만한 돌을 던지는 페르시아 투석병의 2배에 이른다고 기록했다. 어떤 기록에는 '''그들이 날리는 탄은 공중에서 불이 붙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 이렇듯 번성한 덕에 로도스섬에는 각종 교육 및 연구시설도 대거 들어섰고, 당대에 학문 분야에서 로도스섬의 명성은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와 맞먹을 정도였다. 로마와 로도스 공화국이 기원전 164년 평화협정을 맺은 이후, 로도스는 로마 귀족, 부자들의 자제들의 유학지이자 선호학교로 널리 명성을 떨쳤다. 따라서 로마에서 고위 귀족들이 자녀들을 가르치는 가정 교사의 출신을 따질 때, 아테네 출신 다음으로 높이 평가한 부류가 로도스섬 출신이었다. 이런 이유로 [[카이사르]]는 젊은 시절 로도스에서 유학생활을 했고,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티베리우스]]도 황제가 되기 전 아내 [[대 율리아]]의 남성편력과 계속된 불륜, 아우구스투스와 율리아의 갈등 등으로 [[번아웃]]이 온 나머지 한때 모든 공직을 내놓고 [[가출]]할 때 자발적으로 로도스 섬으로 떠나, 무려 7년을 이곳에서 은거하며 유학생활을 했다.[* [[플라비우스 왕조]]~[[하드리아누스]] 시대의 사람으로, 기록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는 [[수에토니우스]]의 책에 따르면, 티베리우스가 로도스 섬에 있을 때 일화도 나온다. 이 믿기 힘든 이야기에 따르면, 어떤 저명한 철학자가 티베리우스의 집 근처에 살고 있어서 티베리우스가 그의 강의를 듣고 싶다고 찾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철학자가 황제의 양자, 사위이며 로도스 섬에서 황제 대리인이자 황제의 아들 신분인 티베리우스가 권력에서 밀렸다고 생각해 면전에 대고, "지금은 자리가 없는데 어쩌나? 언젠가 자리가 남으면 그때 가서 부를 테니 시간 되면 오시던가"라고 비웃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티베리우스가 아버지 아우구스투스의 허락 아래 로마로 복귀했다. 이후 티베리우스는 황제가 되었는데, 그 철학자는 티베리우스의 소식을 듣자마자, 그를 찾아가서 공직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티베리우스는 "지금은 너한테 줄 자리가 없다. 언젠가 자리가 남으면 부를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든지 마음대로 하라"며 돌려 보내는 것으로 복수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오파츠]]인 [[안티키테라 기계]]도 이곳에서 제작한 듯하다. 로도스 섬은 로마의 중요한 동맹국 중 하나가 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로마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동맹국으로서 가진 특권들은 점차 박탈되면서 끝내 로마에 보호국으로 편입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로도스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다른 국가 간의 중계무역 등을 통해 번영을 유지했는데, 이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카시우스 롱기누스]]에게 침략받아 약탈되는 피해를 입는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제정 시대에 이르러 [[사도 바울로]]의 기독교 선교활동이 있었다. 로마의 보호국이 된 이후, 직접 통치를 받지 않았지만 대개의 보호국처럼 쇠락을 거듭했다. 따라서 3세기 말이었던 서기 297년 이후부터는 로마 제국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됐다. 그리고 이런 흐름 속에 로마 제국이 분할된 이후에는 [[동로마 제국]]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